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바오로 2세 (문단 편집) === 선종 === * [[http://www.youtube.com/watch?v=mNzZmmTAtcA|2005년의 모습]] 이렇듯 1990년대 중반부터 교황은 [[파킨슨병]]을 심하게 앓은 데다가, 온갖 [[합병증]]이 겹쳤기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된 상태였다. 한때 교황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퇴위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지만 교황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도좌를 지켰다. 2005년 2월에는 기관지염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된 뒤 기도삽관을 했고, 이 시점부터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전부 필담으로 소통했다. [[2005년]] [[3월 31일]], 사망하기 3일 전에 했던 마지막 강복에서는 건강악화로 [[아멘]]이라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당시 강복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4월 2일]]에는 이미 7만 명이 넘는 군중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몰려들어 교황을 위한 기도회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회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교황궁에서 2000년에 그가 제정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 사백주일) 전야인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바티칸]]에 모인 많은 신자들의 기도 속에서 8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공식적인 사인은 만성 심부전 및 패혈성 쇼크이다. ||<:> [[파일:external/www.asianews.it/vaticano_gpii_domenica_delle_palme_2005.jpg|width=100%]] ||<:> [[파일:external/static.repubblica.it/013.jpg|width=100%]] || ||<:> [[2005년]] [[3월 31일]], 공식석상에 나온 마지막 모습 ||<:> 교황의 시신 || ||<|2> [[파일:external/static.nos.nl/080405_kist_plein_ap_tcm44-163141.jpg|width=100%]] || [[파일:external/img2-3.timeinc.net/popefuneral.jpg|width=100%]] || || [[파일:attachment/요한 바오로 2세/johnpaulII_funeral01.jpg|width=100%]] || || [[파일:attachment/요한 바오로 2세/johnpaulII_funeral03.jpg|width=100%]] || [[파일:attachment/요한 바오로 2세/johnpaulII_funeral04.jpg|width=100%]] || [[2005년]] [[4월 2일]] 사망 당시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이 [[바티칸 시국]]에 모여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우고도 넘쳐나 로마 시내에까지 늘어섰는데 그 추모 인파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4월 8일]]에 거행된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인원이 너무 많아 숙박시설이 모자라게 되자 일반인 참석자를 위해 로마시에서 텐트를 대여하고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할 정도였다. 이렇게 텐트와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워 경건하고 엄숙하게 추모하였다. 이렇게까지 그 죽음을 추모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언론에서는 “세기의 장례식”이라 언급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조문객이 모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TV로 시청한 장례식이라 한다. 세계 각국에서도 [[4월 8일]]에 거행된 교황의 장례식에 조문사절을 파견해 70개국 이상의 [[대통령]]과 [[총리]], 5개국의 [[국왕]]과 [[왕비]], 14개 종교의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했는데, 그 참석면면을 보면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 [[영국]] [[찰스 3세|찰스 왕세자]],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 등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해찬]] [[대한민국 국무총리|국무총리]]를 필두로 한 조문 사절을 파견했다.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도 참석했는데, 이들이 [[미국 대통령]]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계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어쨌든 당시 교황의 시신 앞에 전 세계 대통령들, 총리들, 국왕들 등 국가의 수장들이 [[무릎]] 꿇는 세계적인 면면을 TV 중계로 본 많은 사람들은 교황의 영향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관이 대성당 안으로 운구되기 직전 광장의 인파를 향해 잠시 멈추었을 때, 사람들은 '''눈물과 박수'''로 교황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http://www.youtube.com/watch?v=cbOSbIDJ1xA&feature=player_embedded|영상]]).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dignitaries_at_the_funeral_of_Pope_John_Paul_II|장례식 참석자 명단(영문 위키)]]. [[이탈리아]]에서는 장례식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교황이 사망한 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인파를 향해 사망 사실을 발표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애통해하는 가운데서도 박수를 쳤다. 장례식 후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 그중에서도 [[요한 23세]]가 [[1963년]] 매장되었다가 [[2000년]] 시복되면서 대성당 내의 성 예로니모 경당으로 이장됨에 따라 비게 된 자리에 안장되었다.[[http://www.lynn-rick.com/images/Rome/IMG_2517.JPG|사진]] 다만, 교황 생전의 유서에서는 [[폴란드|고향]] 땅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하며 그 때문에 로마에 묻은 교황청을 비난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판단도 이해의 여지는 있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다른 땅에 묻는다는 것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일:external/www.stpetersbasilica.info/IoannesPaulus-AFrt1b.jpg|w=300]] 이후, [[복자]]로 시복된 교황에 대해 일반 대중과 순례객들이 가까이에서 참배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2011년]] [[5월 3일]] 유해가 대성당 지하 묘지에서 이장되어 대성당 내의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에 새로 마련한 [[대리석]] 석관에 모셔졌다. 대신 이 자리에 안장되어 있었던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의 유해는 변용 제대로 이장되었다. [[인노첸시오 11세]]도 시복되면서 유해가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에 안장된 사례였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는 멋진 [[유언]]도 남겼다. 가장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는 [[폴란드어]]였다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신 일부는 [[한국]]에도 안치돼 있다. 천주교 사도회(팔로티회)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유해 일부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본원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 '하느님 자비의 [[피정]]의 집'에 모셔놓고 신자들이 입을 맞추는 친구(親口) 예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http://imgnews.naver.com/image/003/2011/11/04/NISI20111104_0005409320_web.jpg|사진]] 분당 본원에는 머리카락, '하느님 자비의 피정의 집'에는 혈액이 안치돼 있다. 교황의 시신이 국내로 들어온 것은 2011년 7월 초다. 아울러 조선에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견한 [[파리외방전교회]]도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성해 일부를 들여왔고, 경기도 [[군포시]] 소재 '성 요한의 집'에 안치하고 있다. 팔로티회 안동억 신부는 "로마 교황청과 요한 바오로 2세의 비서 출신으로 [[폴란드]] 크라푸프 대교구장인 스타니스와프 드지비츠 추기경의 배려로 시신을 모실 수 있었다"고 밝혔다. 팔로티회는 분당 본원에서는 금요일 오후 4시 미사에서 친구 예배를 열고, [[피정]]의 집에서는 매월 첫 토요일 밤샘 기도와 셋째 목요일 오후 12시부터 4시반까지 기도에서 역시 친구 예절을 한다. ||<:> [[파일:external/thecatholicrealist.files.wordpress.com/3706372045_68db7cd0b1.jpg|width=100%]] ||<:> [[파일:external/s2.stliq.com/26925997_omelia-di-papa-francesco-sulla-tomba-di-giovanni-paolo-ii-31-ottobre-2013-2.jpg|width=100%]] || ||<:> 교황과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 교황과 [[프란치스코(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2001년 2월 21일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